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문단 편집) === [[쿠르스크 전투]]는 정말로 잃어버린 승리인가? === 폰 만슈타인 원수는 자신의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에서 쿠르스크 전투의 유일한 패전의 이유로 히틀러 총통의 잦은 간섭과 군사 작전 개입을 거론하였다. 헌데 따지고 보면 이 때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남부집단군의 최정예 6군이 통째로 삭제되며 남부집단군의 전투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고질적인 보급문제와 소련군의 역습으로 남부집단군의 전투력은 대규모 공세를 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슈타인은 독일군의 일시적인 반격으로 확보한 돌출부를 제거하기 위해 히틀러가 추진하던 치타델 작전 추진에 단초를 제공했다.[* 치타델 작전은 당시 국방군의 유명한 명장들 대부분이 위험성을 언급하며 반대했었다.] 즉, 쿠르스크 대전차전의 개전에는 만슈타인의 지분 역시 있음에도 그는 이 전투를 이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총통 때문에) 패배한 전투라고 왜곡하며 패전의 책임을 전적으로 히틀러에게 떠넘긴 것이다.[* 다만, 만슈타인은 하리코프 전투에 이에 적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의 즉각적인 공세를 주장했고 히틀러는 준비 후 공격을 주장했고 히틀러의 뜻이 관철 되었기에 만슈타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겠지만 제3차 하리코프 전투 직후의 독일군 역시 너덜너덜한 상태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의도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소련이 동원 능력에서 독일을 능가하고 있었을 뿐더러 독일이 쿠르스크를 언제 공격할 지까지 전부 꿰뚫고 있었기에 쿠르스크로 전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에 준비를 한들 소련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뿐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슈타인이 비판 받는 더 큰 이유는 더 뒤에 있다. 쿠르스크 전투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실패한 싸움이었다. 성채 작전 개시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43년 7월 11일 즈음이면 이미 거의 모든 방향에서의 공세가 돈좌 된 상황이었고 공식적으로 모든 공격은 15일에 끝났다. 그리고 7월 12일부터 작전이 종료 되는 8월 23일까지는 소련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이루어졌다. 독일군은 이 싸움에 모든 것을 끌어다 싸웠음에도 소련군은 후방에 예비대로 대기하던 스텝 전선군을 끌어낼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군이 반격에 나서자 독일이 감당해야 할 전선은 지나치게 길어졌고 만약 쿠르스크에 묶여 있었으면 역으로 포위 당할 위기에 처했고 이것과 연합국의 시칠리아 상륙이 겹치면서 독일군은 후퇴를 결정했다. 만슈타인이 잃어버린 승리라고 책임을 떠넘긴 부분은 이 시점에서 공격을 계속 했으면 쿠르스크 돌출부를 끊어낼 수 있었을 거라고 한 부분이었지만 만슈타인은 스텝 전선군[* 쿠르스크에서 싸우던 전선 부대에 많은 장비를 긴빠이 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투입 되지 않은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의 존재를 몰랐는지 일부러 빼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독일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중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